작품 소개

앤디 워홀의 고양이들, 25마리가 전부 '샘'이었던 이유

앤디 워홀 하면 캠벨 수프 캔이나 마릴린 먼로가 먼저 떠오르시죠. 그런데 그가 실크스크린을 잡기 훨씬 전, 뉴욕의 작은 아파트에서 고양이를 그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수염 난 분홍 고양이, 초록 고양이, 파란 고양이. 색은 제각각인데 이름은 하나같이 '샘'이었어요.





고양이 한 마리에서 스물다섯 마리로

1952년, 워홀의 어머니 줄리아 워홀라가 피츠버그에서 버스를 타고 뉴욕으로 옵니다. 아들이 형편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고서였죠. 그렇게 모자가 함께 살게 된 맨해튼의 작은 아파트에는 헤스터(Hester)라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 다 고양이를 무척 좋아했어요. 그렇게 한 마리씩 늘어나다 보니 어느새 집에는 스물다섯 마리가 넘는 고양이가 살게 됐죠. 그런데 새로 온 고양이들 이름이 전부 '샘(Sam)'이었습니다. 오직 헤스터만 자기 이름을 지켰고요.

대량생산과 반복에 매혹됐던 사람이 고양이 스물다섯 마리에게 전부 같은 이름을 붙였다는 것. 생각해보면 꽤 워홀답죠.





1954년, 고양이들을 그리다

워홀은 이 고양이들을 하나씩 그려 1954년 책 한 권으로 묶어냅니다. 제목은 〈25 Cats Name Sam and One Blue Pussy〉. 'Named'여야 할 자리에 'Name'이 들어간, 문법이 어긋난 제목이었어요. 그리고 이 오타는 끝내 고쳐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았습니다.

책에는 열여섯 점의 고양이 그림과 마지막 한 점의 파란 고양이가 실렸고, 190부 한정으로 만들어졌어요. 재밌는 건 채색을 손으로 했기 때문에 한 권 한 권 색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입니다. 같은 책인데 같은 책이 아닌 셈이죠. 손글씨는 어머니 줄리아가 직접 맡았고요.





계속 그려 나가는 고양이

워홀의 고양이는 1954년에서 끝나지 않았어요. 1958년경에는 'So' 시리즈라는 또 다른 연작을 남겼는데요. So Sweet, So Sunny, So Meow처럼 짧은 문구를 그림과 함께 배치한 작업들이에요.

〈So Happy〉도 여기 속하는 작품입니다. 파란 수염 고양이 한 마리가 'purr'라는 글자에 둘러싸여 있는 그림이죠. 고양이가 골골거리는 소리를 글자로 흩뿌려둔 셈인데, 보고 있으면 그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해요.

시리즈는 다르지만 결국 같은 대상을 계속 그린 거예요. 고양이는 워홀의 초기 작업에서 꽤 오래 머물렀던 소재였습니다.



블롯티드 라인, 워홀식 선 긋기

그림의 선을 자세히 보면 어딘가 끊어지고 번진 느낌이 있는데요. 워홀이 상업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며 개발한 '블롯티드 라인(blotted line)' 기법 때문입니다.

종이에 잉크로 선을 그린 뒤, 마르기 전에 다른 종이를 덮어 눌러 찍어내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선이 곧게 이어지지 않고 점점이 끊기거나 살짝 번지죠. 고양이 털의 결이나 표정이 유독 부드럽게 느껴지는 것도 이 기법 덕분입니다.

여기에 밝은 색을 손으로 얹으면서, 훗날 팝아트에서 보게 될 워홀 특유의 색감이 이미 나타나기 시작해요.






워홀의 지속적인 드로잉

워홀 하면 실크스크린과 팩토리가 먼저 떠오르지만, 그는 손으로 그리는 일을 놓은 적이 없었어요. 1940년대 미술학도 시절부터 말년까지, 1963년에서 1972년 사이를 제외하면 드로잉은 그의 커리어 전체를 관통한 매체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고양이들은 '팝아트 이전의 습작'이라기보다, 워홀이라는 작가의 다른 한쪽에 가깝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릿시즌에서는 〈Pink Sam〉, 〈Green Sam〉, 〈So Happy〉 세 점을 만나보실 수 있어요. 색이 밝고 경쾌해서 공간에 생기를 더해주고, 고양이와 함께 사는 분들이라면 더 특별하게 느껴지실 것 같아요.

이 글에 소개된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