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소개
색으로 감정을 그린 화가 마크 로스코
거대한 캔버스에 색 덩어리 두어 개. 그게 전부인 그림 앞에서 사람들이 우는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이야기예요.
색이 아닌 감정
로스코는 색면추상(Color Field)을 대표하는 추상표현주의 화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정작 본인은 색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정색하곤 했습니다.
"나는 추상화가가 아닙니다. 색이나 형태의 관계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나는 오직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비극, 황홀, 파멸 같은 것들이죠. (…) 만약 당신이 색의 관계에만 감동했다면, 요점을 놓친 거예요."
— 마크 로스코, 셀던 로드먼과의 대화 중 (1956)
색을 봐달라는 게 아니라, 색을 통과해서 감정에 닿아달라는 이야기였어요.
경계가 흐린 사각형
로스코의 그림을 보면 구조는 단순합니다. 단색 배경 위에 사각형 두세 개가 위아래로 쌓여 있죠. 1949년 무렵 도달한 이 형식을 그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 변주했어요.
그런데 자세히 보면 그 사각형에 또렷한 윤곽선이 없습니다. 가장자리가 배경 쪽으로 스며들 듯 번져 있거든요. 그래서 형태가 화면에 붙어 있다기보다 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오래 볼수록 앞뒤로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얇게, 여러 번 겹쳐서
이 효과는 물감을 얇게 여러 겹 올려서 만들어졌어요. 물감을 묽게 희석해 층층이 쌓는 방식인데, 아래층 색이 위층을 통해 은은하게 비쳐 나옵니다.
그래서 로스코의 빨강은 그냥 빨강이 아니에요. 아래에 깔린 색이 함께 올라오면서 깊이가 생기죠. 화면 전체가 안쪽에서 발광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참고로 로스코는 작업 방식을 조수들에게도 숨길 만큼 예민하게 지켰다고 해요.
포스터로 보실 때도 이 부분을 눈여겨보시면 좋아요. 단색처럼 보이는 면 안에서 색이 미묘하게 흔들리는 걸 발견하실 수 있거든요.
크게, 그리고 가까이
로스코의 그림은 큽니다. 높이 2.4미터를 넘는 작품이 많아요. 이건 과시가 아니라 계산된 선택이었습니다.
그림이 시야를 가득 채워야 관람자가 그림 '앞에' 서는 게 아니라 그림 '안에' 들어서게 된다고 봤거든요. 그래서 그는 후기 작품에 대해 꽤 구체적인 관람 지침을 남겼습니다. 캔버스에서 18인치, 그러니까 45cm 정도 떨어져 볼 것. 그림은 관람자의 몸과 정면으로 마주하도록 낮게 걸 것. 방에는 한 번에 한두 사람만 들어올 것.
한 발 물러나 감상하는 게 아니라, 색에 완전히 둘러싸이길 바란 거죠.
색이 어두워지던 시기
1950년대 초의 로스코는 주황, 노랑, 빨강처럼 밝고 따뜻한 색을 주로 썼습니다. 그런데 1950년대 후반부터 자주색, 마룬, 검정, 올리브그린 쪽으로 옮겨가요.
1958년 뉴욕 시그램 빌딩의 포시즌스 레스토랑 벽화를 의뢰받았을 때가 이 시기였는데요. 1959년까지 작업하다 1960년 프로젝트에서 스스로 물러났습니다. 남겨진 벽화들은 지금 런던 테이트 모던에 걸려 있어요.
같은 사각형인데도 시기에 따라 인상이 완전히 달라지는 건 그래서예요. 밝은 시기의 그림은 따뜻하게 열려 있고, 어두운 시기의 그림은 안쪽으로 잠겨 듭니다.

마크 로스코 아트포스터, 그릿시즌에서 만날 수 있어요
그릿시즌에서는 마크 로스코의 아트포스터를 만나보실 수 있어요. 로스코의 그림은 형태가 없어서 오히려 어떤 공간에도 잘 스며들어요. 색 자체가 주인공이라 가구나 소품과 부딪치지 않고, 오히려 공간의 톤을 정리해주는 역할을 하거든요.